내 퇴직연금은 월급형인가, 목돈형인가
앞선 1·2부에서는 노후소득의 바닥이 되는 1층을 키웠습니다. 이제 그 위에 쌓이는 2층, 퇴직연금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출발점은 상품 선택이나 수익률 비교가 아니라 제도 유형 확인입니다. 회사가 설정하는 퇴직연금 제도는 DB형과 DC형으로 나뉘며, 두 제도는 급여가 결정되는 방식과 운용 책임을 지는 사람이 서로 다릅니다. 반면 IRP는 DB·DC와 나란히 놓이는 제도 유형이 아니라 퇴직급여를 받아 담고 개인이 추가로 납입할 수 있는 개인형퇴직연금 계좌입니다. 따라서 유형 판별의 갈림길은 DB형(월급형)과 DC형(목돈형)입니다. 이 구분을 모른 채 계산하면 실제로는 목돈인 DC 적립금을 회사가 약속한 월급형 급여처럼 여기거나, 회사가 책임질 DB 급여를 개인 투자계좌처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유형 판별은 단순한 용어 공부가 아니라 내 노후소득 지도의 출발점을 정확히 찍는 일입니다.
DB · DC · IRP, 한눈에 구분하기
| 구분 | 돈을 정하는 것 | 운용·위험 | 노후에 받는 모습 |
|---|---|---|---|
| DB (확정급여) | 받을 급여가 확정 | 회사가 운용·책임 | 💧 월급형(연금) 또는 일시금 |
| DC (확정기여) | 회사가 낼 부담금이 확정 | 내가 운용·손익 귀속 | 💰 목돈(굴려서 인출) |
| IRP | 퇴직급여를 옮겨 담는 계좌 | 내가 운용 | 💰 목돈(연금 개시) |
DB형은 내가 받을 퇴직급여의 산식이 먼저 정해지고, 회사가 그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적립금을 운용하는 제도입니다. 투자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쳐도 부족분을 책임지는 쪽은 회사이므로, 내 약정 급여가 운용 결과에 따라 직접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비유하면 나는 목적지를 확인하고 표를 산 승객에 가깝고, 회사는 연료와 운행을 관리하는 운전자인 셈입니다. 그래서 DB형을 볼 때는 계좌의 단기 수익률보다 근속기간과 임금 흐름이 급여 산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피는 편이 중요합니다. 노후에는 요건을 갖추면 연금이라는 월급형 현금흐름으로 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일시금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내 경우를 판단할 때는 회사의 퇴직연금 규약과 예상 퇴직급여를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제도 이름만 보는 것보다 실제 예상 금액이 어떻게 산출됐는지를 확인해야 노후 월소득으로 정확히 옮겨 적을 수 있습니다.
DC형에서는 회사가 매년 연 임금총액의 1/12 이상을 부담금으로 납입하고, 적립금의 운용은 내가 맡습니다. 어디에 배분했는지, 얼마나 오래 보유했는지, 수수료가 얼마나 빠져나갔는지에 따라 퇴직 시점의 적립금이 달라집니다. 수익이 나면 내 자산이 커지고 손실이 나면 그 결과도 내 몫입니다. 퇴직할 때 이 적립금은 원칙적으로 IRP로 옮겨져 하나의 목돈이 됩니다. IRP는 별도의 퇴직연금 제도 유형이 아니라 DC 적립금 같은 퇴직급여를 받아 담고, 개인이 추가납입한 자금과 함께 운용할 수 있는 계좌입니다. 하지만 목돈의 크기만으로 노후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큰 저수지가 있어도 매달 얼마씩, 얼마나 오래 물을 흘려보낼지 정하지 않으면 생활비가 되지 못합니다. 내 경우에는 현재 잔액만 확인하지 말고 자산 배분, 비용, 인출 속도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DC에서 쌓아 IRP에 담은 목돈을 운용하면서 매달 꺼내 쓸 수 있는 소득으로 번역하는 과정이 우리 통합 계산기의 ‘목돈 굴려 만드는 소득(STEP 3)’입니다.
DB가 유리할까, DC가 유리할까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한쪽짜리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판단의 중심축은 분명합니다. 내 임금상승률과 DC의 기대 투자수익률(수수료 차감 후)을 같은 기준 위에 놓고 비교하는 것입니다. DB는 임금과 근속의 흐름이 급여에 반영되는 구조이고, DC는 적립금이 실제로 거둔 성과가 결과를 좌우하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최근 수익률이 높았다는 이유만으로 DC를 고르거나, 회사가 책임진다는 이유만으로 DB를 무조건 유리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승진 가능성, 남은 근속기간, 임금피크제 적용 여부처럼 앞으로의 임금 경로를 먼저 그려야 합니다. 그다음 DC에서 감당할 수 있는 변동성과 수수료를 뺀 기대수익을 현실적으로 비교해야 합니다. 핵심은 가장 낙관적인 숫자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내 경력과 투자 행동이 실제로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은 숫자를 쓰는 데 있습니다.
| 이런 경우 | 상대적으로 유리 |
|---|---|
| 임금상승·승진·장기근속 가능성이 크다 | DB |
| 임금피크제 등으로 말년 임금이 꺾인다 / 운용에 자신 있다 | DC |
- 퇴직연금은 노후의 2층 — 국민연금 위에 직장에서 쌓은 소득을 더하는 층이며, 세계적으로 DB→DC 이동과 함께 운용 위험도 개인에게 옮겨지고 있습니다.
- DB=월급형(회사 운용·책임), DC=목돈형(내 운용)입니다. IRP는 이 둘과 나란한 제도 유형이 아니라 퇴직급여와 개인납입금을 담아 운용하는 계좌입니다.
- DB vs DC의 핵심 비교는 임금상승률 vs DC 수익률입니다. 임금이 꾸준히 오르면 DB가, 말년 임금이 꺾이거나 운용 성과가 충분하면 DC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편입니다.
- 전환에는 근로자대표 동의가 필요합니다. DC의 기존 적립금을 DB로 역이전할 수 없다는 것은 2016년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이며, 향후 기간의 제도를 DB로 변경하는 것까지 금지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DB형 — 퇴직급여를 ‘월급’으로 바꾸기
내 퇴직연금이 DB형이라면 운용 성과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퇴직할 때 얼마를 받을 수 있는가입니다. DB형은 받을 급여의 산정 방식이 미리 정해져 있고, 적립과 운용의 책임은 회사가 집니다. 그래서 근로자에게는 시장 수익률을 좇는 계좌라기보다, 근속기간과 퇴직 무렵의 임금을 바탕으로 회사가 마련해 주는 또 하나의 연금 재원에 가깝습니다. 예상 퇴직급여를 계산한 뒤 수령 기간으로 나누어 보면, 막연한 목돈이 노후의 월 현금흐름으로 바뀝니다.
DB 퇴직급여, 얼마가 될까
DB의 법정 최저 급여는 1년당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입니다. 핵심은 ‘평균임금’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이는 급여명세서에 찍힌 ‘마지막 월급’과 같은 말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퇴직 전 3개월 임금총액 ÷ 그 3개월의 총일수로 산정한 1일 평균임금입니다. 따라서 기본급만 볼 것이 아니라 산정 대상에 포함되는 임금과 실제 퇴직 시점의 기간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지금 예상하는 금액은 노후 계획을 세우기 위한 기준값이고, 최종 금액은 퇴직 당시의 임금 자료와 회사 규약에 따라 확정됩니다.
퇴직 전 3개월 임금총액이 1,200만원이고 그 기간 총일수가 92일이라면, 1일 평균임금은 약 13만435원입니다. 여기에 30일분을 적용하면 약 391만원, 근속 20년을 반영하면 예상 퇴직급여는 약 7,800만원이 됩니다. 흔히 말하는 ‘월 평균임금 × 근속연수’와 비슷한 규모입니다. 이 계산이 중요한 이유는 DB가 최종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전체 근속기간의 급여를 산정하기 때문입니다. 임금이 꾸준히 오른 사람은 과거의 근속기간도 퇴직 무렵의 높은 임금 수준으로 평가받는 효과가 있습니다. 반대로 퇴직 직전 임금이 낮아지는 구조라면 같은 근속기간이라도 예상액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내 경우에는 퇴직 시점의 임금 흐름까지 함께 살펴야 합니다.
일시금 대신 ‘월급’으로 받는 법
DB 퇴직급여는 목돈으로만 받아야 하는 돈이 아닙니다. 55세 이상 · DB 가입 10년 이상이라는 요건을 충족하면 5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연금으로 나누어 받을 수 있고, 그 외에는 일시금으로 받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연금 수령 가능’과 ‘내 생활비에 맞는 수령 설계’가 서로 다른 문제라는 점입니다. 매달 필요한 생활비, 국민연금이 시작되는 시점, 다른 금융자산의 인출 계획을 함께 놓고 기간을 정해야 퇴직급여가 오래 버티는 월급이 됩니다. 다만 55세 전에 퇴직하면 급여가 IRP로 옮겨지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언제부터 얼마씩 받을지는 IRP 단계에서 결정하게 됩니다.
- DB 급여 = 1일 평균임금 × 30 × 근속연수(≈ 월평균임금 × 근속연수). 기준은 단순한 ‘마지막 월급’이 아니라 퇴직 전 평균임금입니다.
- 55세+·가입 10년+이면 5년 이상 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습니다. 목돈을 생활비에 맞는 월급형 현금흐름으로 바꾸는 선택입니다.
- 정확한 금액은 회사·가입 금융기관에서 확인하고, 통합 계산기 STEP 2 DB에 총액을 입력하면 은퇴~기대수명 기간의 대략적인 월액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임금피크제로 말년 임금이 꺾일 예정이라면 꺾이기 전 DC 전환을 검토하되, 전환 가능 조건과 이후의 운용 책임까지 함께 따져야 합니다.
DC 목돈과 IRP 계좌 — 목돈 굴리기와 절세의 핵심
DC 제도에서 쌓인 퇴직자산은 퇴직할 때 대개 IRP 계좌로 옮겨집니다. 이후의 생활비를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얼마가 쌓였는가”만이 아닙니다. 퇴직 시점의 DC 목돈을 어떤 IRP 계좌로 이어받고, 어떤 자산에 배분하며, 어떤 속도로 꺼내 쓰는가가 중요합니다. 수령 방법에 따라 세금이 달라지고, 운용과 인출의 조합에 따라 같은 목돈에서도 매달 쓸 수 있는 소득과 자산의 수명이 달라집니다. 이 장은 퇴직자산을 노후소득으로 바꾸는, 3부의 핵심입니다.
DC 목돈은 어떻게 쌓이고 IRP 계좌로 이어지나
DC는 회사가 매년 연 임금총액의 1/12 이상을 근로자 명의의 계좌에 넣고, 근로자가 직접 운용하는 제도입니다. 최종 적립금은 약속된 퇴직급여가 아니라 부담금 + 운용손익 − 수수료의 결과입니다. 회사가 넣어 주는 금액이 같아도 어떤 상품을 선택했는지, 현금성 자산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시장이 흔들릴 때 운용 원칙을 지켰는지에 따라 퇴직 시점의 목돈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직접 운용’이 곧 잦은 매매를 뜻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내 은퇴 시점과 감당할 수 있는 변동폭에 맞춰 자산을 나누고, 정기적으로 비중을 점검하는 일이 핵심입니다. 수익률만 좇다가 퇴직 직전 큰 손실을 맞는 것도 위험하지만, 손실이 두려워 장기간 낮은 금리 상품에만 두어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역시 노후소득을 줄이는 선택입니다.
퇴직하면 DC 제도에서 쌓인 적립금은 대개 IRP 계좌로 옮겨집니다(2022년 4월부터 원칙적으로 세전 의무이전, 단 55세 이후 퇴직이나 퇴직급여 300만원 이하 등은 예외). 이 이전은 단순히 계좌를 바꾸는 절차가 아닙니다. 퇴직소득세를 당장 확정해 내지 않고 뒤로 미룬 채, 목돈을 연금 재원으로 계속 운용할 수 있게 하는 연결 구간입니다. 그래서 퇴직 직후 IRP 계좌를 해지해 현금화할지, 계좌 안에서 운용을 이어 갈지는 세금과 노후 현금흐름을 함께 놓고 판단해야 합니다.
IRP 계좌에는 개인이 추가로 납입할 수도 있습니다. 이 개인부담금은 연금저축과 합산 연 900만원까지 세액공제 대상이 됩니다(연금저축 없이 IRP 단독으로도 최대 900만원). 다만 세액공제는 공짜 수익이 아니라, 지금의 세 부담을 줄이는 대신 노후에 연금 방식으로 꺼내 쓰도록 유도하는 제도입니다. 따라서 환급액만 보고 무리하게 납입하기보다 생활비와 비상자금을 먼저 확보하고, 장기간 묶어 둘 수 있는 돈을 넣는 것이 맞습니다.
DC 제도와 IRP 계좌에는 위험자산 최대 70% 한도(최소 30% 안전자산)가 있어 배분에 제약이 있지만 연금저축펀드에는 이 70% 한도가 없으며, 구체적인 자산배분과 월배당 상품의 활용법은 4부에서 다룹니다.
★ 이것만은 — 일시금 대신 ‘연금’으로 받아 세금 30~50% 아끼기
퇴직급여를 일시금으로 받으면 퇴직소득세를 한 번에 냅니다. 반면 IRP 계좌에서 요건에 맞게 연금으로 나눠 받으면 원래 낼 퇴직소득세, 즉 이연퇴직소득세의 일부만 부담합니다. 세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납부 시점이 분산되고 실제 부담액도 줄어듭니다. 운용을 계속할 자금이 계좌 안에 더 오래 남는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절세 효과는 단순한 세율 차이보다 큽니다.
적용되는 비율은 실제로 연금을 받은 기간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래 나눠 받을수록 감면 폭이 커지는 구조이므로, 퇴직 직후 필요한 현금과 노후 전 기간에 필요한 생활비를 구분해야 합니다. 당장 쓸 계획이 없는 돈까지 일시금으로 꺼내면 세금 감면과 과세이연, 이후의 운용 기회를 함께 포기할 수 있습니다.
| 실제 연금수령 연차 | 내는 퇴직소득세 | 감면 |
|---|---|---|
| 1~10년차 | 원래의 70% | 30% 감면 |
| 11~20년차 | 원래의 60% | 40% 감면 |
| 21년차 이후 | 원래의 50% | 50% 감면 |
※ 2026년부터 ‘21년차 이후 50% 감면’이 신설. ‘11년차 이후 무조건 40%’는 옛 설명입니다.
내 경우에는 먼저 퇴직급여 중 주택수리비나 부채 상환처럼 퇴직 직후 반드시 필요한 금액을 따로 적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 남은 돈을 생활비 보충용 연금으로 나누면, ‘전부 일시금’과 ‘전부 장기연금’ 사이에서 현실적인 수령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절세는 돈을 오래 묶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꺼내고 나머지 자산의 과세와 운용을 뒤로 미루는 설계에서 만들어집니다.
IRP는 하나의 계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돈의 출처는 같지 않습니다. 출처가 다르면 인출할 때 적용되는 세금도 달라집니다. 이 구분을 놓치면 예상 세후 연금액을 잘못 계산하거나, 연간 연금소득 규모를 필요 이상으로 크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① 회사 퇴직급여(이연퇴직소득)는 위 표의 30~50% 감면 방식으로 과세됩니다. 이는 회사에서 이전된 퇴직급여에 원래 부과될 퇴직소득세를 연금 수령 시점까지 미뤄 두었다가, 실제 연금수령 연차에 맞는 비율로 내는 구조입니다. 이 원금 부분은 연 1,500만원 분리과세 한도 판정에서 제외됩니다.
② 반면 내가 세액공제 받아 넣은 개인부담금과 그 운용수익은 55~69세 5.5% 등 연금소득세가 적용되고, 1,500만원 한도에 포함됩니다. 같은 계좌에서 같은 날 돈을 받더라도 어떤 재원에서 인출된 것으로 처리되는지에 따라 과세 논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회사에서 넘어온 퇴직급여와 내가 절세를 위해 추가 납입한 돈을 모두 ‘연금소득세 3.3~5.5%’로 뭉뚱그리면 큰 오해가 생깁니다. 금융기관의 계좌 화면이나 연금 지급 명세에서 재원별 금액을 확인하고, 세전 수령액이 아니라 실제 세후 수령액을 기준으로 생활비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연금수령한도 — 너무 빨리 빼면 감면이 깨진다
IRP 계좌에 돈을 넣어 두었다고 해서 모든 인출이 자동으로 ‘연금수령’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퇴직소득세 감면을 받으려면 세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나눠 받아야 합니다. 세법상 연금수령한도 = 평가액 ÷ (11 − 연금수령연차) × 120%입니다. 여기서 평가액은 연금계좌에 남아 있는 자산의 가치를 뜻하고, 연금수령연차는 실제 수령 계획에서 세금 효과를 좌우하는 시간축입니다.
예컨대 1년차 한도는 평가액의 12%(평가액 ÷ 10 × 120%)이고, 11년차부터는 한도가 사라져 자유롭게 인출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 많은 돈을 꺼낼수록 남은 자산이 줄어 이후의 운용 여력도 함께 작아집니다. 반대로 필요한 생활비만 인출하면 계좌에 남은 돈은 계속 운용되고, 시장 상황이 좋을 때 회복과 성장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한도를 넘겨 한꺼번에 빼면 초과분은 ‘연금외수령’으로 보아 감면 없이 과세됩니다. 문제는 초과 인출이 세금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은퇴 초기에 원금을 크게 줄이면 이후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더 높은 비율로 자산을 꺼내야 하고, 하락장에서 손실 난 자산을 매도할 가능성도 커집니다. 천천히 오래 나눠 받을수록 세금이 유리하다는 말은 곧 노후자산의 수명을 관리하라는 뜻입니다.
IRP 목돈을 매달 소득으로 — 인출 방식
IRP 계좌의 목돈은 보유액 그 자체로는 생활비가 아닙니다. 매달 또는 정해진 시기에 계좌 밖으로 꺼내 쓸 수 있도록 인출 규칙을 만들어야 비로소 노후소득이 됩니다. 대표적인 방식은 확정기간형(10·15년 등), 확정금액형(월 정액), 종신연금형(보험, 평생 지급), 그리고 잔액을 계속 굴리는 실적배당형 병행입니다.
확정기간형은 정해진 기간 안에 자산을 나눠 받기 때문에 현금흐름을 예상하기 쉽습니다. 다만 지급 기간이 끝난 뒤에도 생존해 있다면 다른 소득원이 필요합니다. 확정금액형은 매달 필요한 생활비에 맞추기 편하지만, 운용수익과 시장 상황에 따라 자산이 소진되는 시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종신연금형은 오래 살 위험을 보험사에 이전하는 대신, 중도 활용의 유연성과 남은 자산의 상속 가능성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실적배당형은 성장 가능성을 남겨 두지만 지급액과 계좌 잔액이 시장 변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실제 설계에서는 한 가지 방식만 고집하기보다 역할을 나누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국민연금과 다른 고정소득으로 채우지 못하는 필수 생활비는 예측 가능한 지급 방식으로 보완하고, 의료비나 주거비처럼 시점을 알기 어려운 지출은 유동성 있는 자산으로 남겨 둡니다. 여행비와 취미비처럼 조절 가능한 지출은 시장 상황에 따라 인출액을 바꿀 수 있게 설계합니다. 내게 맞는 방식은 최고 수익률을 약속하는 방식이 아니라, 생활비가 필요한 때 자산을 헐값에 팔지 않게 해 주는 방식입니다.
OECD(2024)는 은퇴자산 인출(decumulation)에 단일 정답 대신 계층화를 권합니다. 은퇴생활의 지출은 모두 같은 성격이 아니므로, 자산도 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① 필수 생활비는 공적연금 + 필요한 만큼의 종신소득으로 장수위험을 방어하고, ② 비상지출은 안전·유동 자산으로, ③ 선택지출은 유연한 프로그램 인출로 나누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층을 나누면 시장이 하락했을 때도 당장 필요한 생활비 때문에 성장자산을 급히 처분할 가능성이 낮아집니다.
참고로 “배당만으로 생활한다”는 표현은 부정확할 수 있습니다. 통장에 들어오는 연금 지급액에는 이자와 배당뿐 아니라 원금 인출이 섞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당률이 높아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안전한 생활비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분배금의 재원, 자산가격의 변동, 원금이 줄어드는 속도를 함께 봐야 합니다. 이 ‘배당형 vs 소진형’과 개인연금·월배당 자산을 연결하는 방법은 4부에서 깊게 다룹니다. OECD Pensions Outlook 2024
퇴직연금 설계는 정확한 잔액과 제도 유형을 확인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회사가 어떤 제도를 운영하는지, 현재 적립금이 얼마인지, 어떤 상품에 투자되어 있는지에 따라 예상 퇴직자산과 인출 전략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내 정확한 퇴직연금 적립금·유형은 회사 인사팀이나 고용노동부 퇴직연금·가입 금융기관에서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특히 실제 수령이나 이전을 앞두고 있다면 공식 확인값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다만 여러 기관을 찾아 확인하는 절차가 번거롭고, 지금은 정밀한 상담보다 대략적인 규모부터 알고 싶을 수 있습니다. DB 총액이나 DC 목돈이 노후에 매달 얼마가 되는지 가입 없이 빠르게 가늠할 때는 노후준비 통합 계산기(STEP 2·3)와 퇴직금 계산기를 먼저 이용해 보세요. 개인납입분의 세액공제 환급은 연말정산 미리보기로 대략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계산 결과는 방향을 잡는 추정치로 활용하고, 최종 의사결정 전에는 회사 인사팀·고용노동부·가입 금융기관의 공식 자료와 대조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 DC 목돈은 퇴직 시 대개 IRP 계좌로 이전 · 개인 추가납입은 연 900만원 세액공제.
- ★ 일시금 대신 연금으로 나눠 받으면 퇴직소득세 30~50% 감면(길게 받을수록↑).
- 회사 퇴직급여(이연퇴직소득)와 개인 세액공제분은 세금·1,500만 판정이 다르다.
- 연금수령한도(평가액/(11−연차)×120%) 안에서 천천히 — 초과 인출은 감면 깨짐.
DB는 월급형으로 1층 위에 얹고, DC·IRP는 목돈으로 다음 단계에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목돈은 개인연금과 합쳐져 월배당으로 굴러갑니다. 다음 PART 4에서는 3층, 즉 개인연금과 월배당 운용으로 넘어갑니다. ‘배당만 받고 원금을 지킬까(배당형), 원금까지 나눠 쓸까(소진형)’ — 평생 월급의 마지막 조각을 맞춥니다.
→ DB·DC를 넣어 내 월 수령액 대략 계산하기 (통합 계산기)
※ 정확한 퇴직연금 적립금·유형은 회사·가입 금융기관에서 확인하세요. 통합 계산기는 가입 없이 월 수령액을 빠르게 가늠하는 용도입니다.
- 고용노동부, 퇴직연금 제도 안내(DB·DC·IRP, 평균임금·지급요건) 및 퇴직연금 현황(2026). moel.go.kr
-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및 시행령(퇴직급여·연금요건·중도인출·이전) 2026 시행본. 국가법령정보센터.
- 국세청, 사적연금 과세표·이연퇴직소득세 감면(1~10년 30%·11~20년 40%·21년~ 50%)·1,500만원 기준(2026). nts.go.kr
- 소득세법 시행령(연금수령한도·연금수령요건) 2026. 국가법령정보센터.
- OECD, Pension Markets in Focus 2024(DB→DC) · Pensions Outlook 2024(디커뮬레이션 계층화).
- World Bank, 다층연금 분류(2층 = 의무·적립 기업연금).